“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이별의 슬픔을 견디고, 떠나는 이를 원망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존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김소월 「진달래꽃」 첫 소절이다. 고등학교 시절 늘 시험 문제로 출제되어 거의 본능처럼 외워 아직도 콧노래를 부르며 시를 읊조릴 수 있다.

이른 봄 번데기로 겨울을 무사히 넘긴 배고픈 애호랑나비가 선홍빛 진달래꽃에 머리를 박고 꿀을 빨며 생명을 회복하고 있다. 겨울 저장식량은 거의 바닥나 먹을 것 없던 시절에 가장 먼저 무리지어 피는 진달래꽃은 독성도 없고 채취도 쉬워 사람들이 만들어 먹기 좋은 음식 재료였다.
진달래 꽃 흡밀하는 애호랑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진달래 꽃 흡밀하는 애호랑나비.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산과 들 어디에나 피는 진달래 꽃잎을 따 반죽한 찹쌀가루에 장식으로 얹어 먹던 진달래 화전은 새해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몇 천 종의 외우기도 어려운 식물 중 진달래는 대부분 사람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는 꽃나무다.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먹을거리로 ‘삶의 리듬’ 속에 들어와 있는 익숙한 식물이어서 그럴 것이다.



유튜브 손녀가 만든 진달래 떡

같은 진달래 과의 식물이지만 ‘노랑만병초’라는 이름은 생소하다. 화려하지도, 흔하지도 않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멸종위기식물이다. 풀 ‘초(草)’가 있지만, 부피 생장을 하는 엄연한 나무로 고산 툰드라 지대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북방계 관목이다.

노란색 꽃을 피우며 만 가지 병을 고치는 풀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그라야노톡신(grayanotoxin)이라는 신경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노랑만병초의 꽃, 잎 등을 섭취하면 구토, 부정맥 등을 유발하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름은 ‘만병을 고친다’지만, 실제로는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식물이다. 나비도 사람도 먹지 못하게 만든 이 독성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초식동물과 천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수억 년 동안 진화해 온 생존 방어 물질이다.

노랑만병초가 사는 지역은 해발 1600m 이상의 고산 지대로 바람이 세고, 토양이 거의 없어 영양분이 부족한 바위투성이의 극한 환경이다. 이런 곳에서는 한 번 잎을 뜯기거나 줄기가 훼손되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병초는 자신을 해치려는 천적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강한 독성을 진화적으로 선택했다.
멸종위기종 노랑만병초. (사진 이강운 대기자 @한택식물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노랑만병초. (사진 이강운 대기자 @한택식물원)/뉴스펭귄

사슴도, 벌레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독성 물질로 무장했지만 못된 인간들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산꼭대기까지 점령하여 길을 내고, 짓밟고 쇠줄을 거는 케이블카 공사로 산 전체를 흔들려 하고 있다. 노랑만병초 목숨이 간당간당해졌다.

2007년 설악산에서 ‘노랑만병초’ 최초 발견 당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1967년 이후 문헌상으로 전해지던 그 실체를 40년 만에 확인’ 이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냈다. 위협 요인을 해소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아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강력한 보호조치를 천명하며 난리를 치더니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한반도 산악 생태계의 최후 보루다. 이곳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들의 마지막 피난처이며, 한반도 생물다양성의 핵심 거점이다. 가장 위험한 개발 압력인 케이블카 공사를 허가해주며 위협 요인 해소는커녕 오히려 멸종 위협 요인을 만들고 있는 국립공원공단의 현 주소다.

케이블카는 공중으로 지나가니 괜찮다하고 공사를 시작하면  알아서 생물들이 피해 줄 거라는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린다. 하지만 공사용 임시도로, 진입도로를 개설하고 상·하부 정류장과 기둥을 세울 기초를 닦느라 대규모로 토양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쿵쿵거리며 바닥을 다질 것이다. 육중한 쇠줄을 지탱하는 기둥과 정류장 그리고 관리도로와 전기시설은 생물들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외부 압력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는 멸종위기곤충 멋조롱박딱정벌레(Acoptolabrus mirabilissimus)에게는 치명적이다. 다른 곤충과는 달리 멋조롱박딱정벌레는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한다. 오직 걸어 다니며 숲 바닥· 낙엽층· 토양 표면에서 지렁이, 톡토기나 작은 애벌레를 사냥하는 곤충이다.
멸종위기종 멋조롱박딱정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멋조롱박딱정벌레.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행동반경이 짧고 좁은 멋조롱박딱정벌레에게 숲을 끊고 콘크리트 구조물과 자갈 포장을 한 도로와 바닥은 갑자기 만들어진 사막이나 큰 바다 같다. 이동이 불가능해져 개체군이 조각난 서식처 모양대로 조각조각 갈라지고 원래 살던 지역은 포식자에게 노출되어 바로 멸종할 수밖에 없다.

멋조롱박딱정벌레의 종 이름인 mirabilissimus는 라틴어로 "매우 경이로운"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비취색의 투명하고 금속광택으로 반짝이는 이름값 하는 아름다운 곤충으로 멸종위기종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종(endemic species)이다. 고유종은 우리나라에서 멸종이 되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생물을 말한다.

고유종은 한 국가의 자연주권 일뿐만 아니라 인류 공동자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CBD (생물다양성협약), CITES(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조약)이나 IUCN(국제 자연 보호 연맹) 에서는 멸종위기종과 함께 고유종 보전을 국가의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환경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국제적으로 “나쁜 선례”로 언급될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를 왜 강행하려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설악산국립공원은 멸종위기종 산양의 핵심 서식지다. 그렇지 않아도 몇 개체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을 환경부가 주관이 되어 떼죽음 시켰다. 2019년부터 전국에 설치된 1630㎞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는 산양에게 ‘죽음의 울타리’가 됐다.
멸종위기종 산양.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멸종위기종 산양.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 원인을 야생멧돼지 탓으로 떠넘기고 산에 철조망을 친 책임지지 않는 행정은 기가 막힌다. 울타리를 친다고 돼지열병을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진짜 막아야 할 것은 멧돼지가 아니라, 돼지의 과밀 사육과 장거리 이동 구조의 축산 시스템 그 자체다.

그러나 이 불편한 진실은 건드리지 않은 채 방역의 책임을 야생동물에게 전가한 무지한 전문가와 무작정 따라 수 백 억 원 들여 울타리 정책을 입안한 환경부 행정 관료들의 실명을 들어 질타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울타리가 일부 열리자 산양의 집단 이동이 관찰됐다. 특히, 겨울철인 1월과 2월에는 산양이 개방 구간을 통과한 것만 각각 900건에 달했다. 산양의 생존을 위협했던 철제 울타리는 철거하면 그나마 회복할 수 있지만 산양에게 가장 치명적인 구조물은 영구적으로 고정될 케이블카다.

산양은 사람의 접근과 소음, 서식지 단절에 극도로 민감한 종이다. 케이블카 노선은 산양들의 핵심 서식·이동 경로로 케이블카 지나갈 때마다 내는 굉음과 잘게 쪼개진 서식지 단절로 더 이상 산양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축구장 6개 크기의 멸종위기 동물 복원시설이 설악산국립공원 안에 들어섰다. 한편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체계적인 증식·복원을 통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자연생태계 건강성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종 복원 거점 시설을 만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를 허가해주고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2019년 9월 16일 환경부가 설악산 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백지화를 결정했다. 백두대간의 핵심구역인 설악산 지형을 지나치게 변화시키고 설악산의 생태·경관적 가치를 훼손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미 개발 불가의 결정된 사업을 다시 들춰내어 지역 경제 운운하는 양양군과 강원도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사업을 반려할 공무원은 없는지? 내부의 전문가나 담당자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국가적 차원의 정책 판단이 충분히 가능한데 참 안타깝다.

국립공원과 멸종위기종과 국가 생명 인프라를 지켜내며 사업 계획을 반려했던 2019년 당시 원주지방환경청의 김기용 과장과 박연재 원주지방환경청장(현 국립환경과학원 원장)의 생명에 대한 맑은 정신을 현재 담당 공무원들은 이어 받지 못할까?

2026년 1월 6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기자회견에 시민들이 모였다. 엄동설한에 국립공원을 지키고, 법과 상식을 지키고, 미래 세대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섰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한 것은 침묵하는 행정, 꼼짝도 하지 않는 공무원 조직, 그리고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무기력한 정부였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기자회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기자회견.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내란 때 불법적인 명령에 저항한 군인들이 진급했다. 환경부 장관과 원주지방환경청장과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의 설악산 케이블카 강행의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담당 공무원이 없다. 위 탓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는 ‘참 공무원’이 그립다.

경주 APEC의 ‘나비’도 그렇고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판다’를 언급하며 생물을 소재로 고급 외교를 펼치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기대해 볼 수밖에 없다.

이상주의적 생태론자는 아니어도 대한민국만을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생태론자는 확실할 것 같으므로.


이강운 대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서울대 농학박사.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개교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등 멸종위기종 복원과 멸종위기종의 산업적 활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이며 곤충방송국 유튜브 채널 Hib(힙)의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