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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사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작성자
gweconet
작성일
2026-02-13 13:53
조회
32
https://v.daum.net/v/20260211144920677

[멸종위기종의 안부를 묻다] 사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이강운 대기자  2026. 2. 11. 14:49




새벽녘, 아내가 빠끔히 방문을 열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 발효식초 한 컵을 넣어준다. 혀끝을 깨우는 식초의 시큼한 향과 딸아이의 애틋한 마음을 함께 마신다. 당뇨에, 혈압에 부정맥까지 온갖 병을 지니고 있는 종합병원 아빠를 걱정하며 딸이 마련한 발효식초다.

발효 식초는 곡물이나 과일 등의 당분을 알코올로 발효시킨 뒤, 이 알코올을 다시 식초로 발효시킨, 두 번에 걸쳐서 발효 과정을 거친 식품이다. 시간과 정성이 더해진 발효식초를 준비해준 딸의 효심도 그러려니와 식초에 담겨진 미생물의 시간과 노동이, 그리고 인간이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 자연의 지혜를 매일 아침 느낀다.
지난주에 용인 시내에 있는 양조장을 방문했다. 25여 년 전 부모님과 함께 홀로세생태학교에서 곤충, 환경을 공부하던 제자가 운영하는 전통주를 담그는 양조장이었다.



양조장에서.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현미경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들여다보고, 나비를 쫓고, 쓰러진 나무를 해체하며 사슴벌레를 채집하던 초등학생이었는데 사업장을 차렸다니 대견했다.
어릴 적 생태학교를 드나들던 아이는 외고에, 외국 유학에 오랜 시간 돌고 돌았지만 결국 자연 속에서 배운 생태 공부를 미생물로 술을 빚는 직업으로 삼아 여전히 생태학교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쫓아다니던 예쁜 여학생과 마침내 결혼하고 '진정 자신이 원하던 일을 찾았다'며 신나하던 녀석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홀로세생태학교에서 곤충 채집. (사진 이강운 대기자)/뉴스펭귄 
대학시절 필자의 별명은 주(酒)강운. 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둘러앉아 두런두런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라 붙여진 별명이다. 술의 종류는 가리지 않으나 시골 저녁의 풍경을 닮은 동동주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2년 전 돌아가신 장모님이 담그시는 동동주는 진하고 단맛이 나는, 아주 맛난 술이었다. 고슬고슬하게 찐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항아리에 담아 이불로 둘둘 말아 술이 잘 익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방바닥도 따끈한 25도 정도를 만드느라 몇 날 며칠 불 조절을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룩도, 온도도, 오직 감각으로만 하시다보니 실패도 많이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동네 친구로 지내던 아내였으므로 친구 집 놀러가듯 동동주를 마시러 많이 들락거렸다. 삼겹살에 동동주는 대체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이라 이 술을 마시기 위해 아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를 이어 딸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장모님이 아내에게 술 빚는 기술을 전수하지 않으셨다. 동동주 때문에 결혼했지만 30여 년간 그 맛난 동동주를 마시지 못해 섭섭했는데 뜻하지 않게 전통주를 만드는 제자 덕분에 오랜만에 맛난 동동주를 실컷 마셨다. 옛날 장모님이 담가주시던 천하일품의 그 맛과 똑같은 동동주를 맛보니 "없어서 못 판다"는 녀석의 너스레가 허풍은 아닌 것 같다.

"눈에 안 보이는 아주 작은 것"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미생물은 인류의 역사 자체를 함께 써 내려온 동반자다. 빵 한 조각, 김치 한 포기, 된장 한 숟가락, 요구르트 한 병, 술 한 잔 그리고 식초까지 인류의 식문화 대부분은 미생물의 작품이다.

쓸모없어 보이는 미생물의 역할은 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발효는 멈추고 우리의 식탁은 얼마나 단조로워질까?

모두 좋은 놈들만 있는 게 아니어서 질병과 죽음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미생물인 발진티푸스, 콜레라를 비롯한 많은 전염병들은 공기 중의  더러운 곰팡이가 일으킨다. 그러나 곰팡이를 퇴치할 항생제 역시 곰팡이와 세균이 만들어내는 물질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병을 이겨내는 힘조차, 다른 생명체의 능력을 빌린 결과로 미생물을 온순하게 만들어서 동족의 공격을 막는 멋진 무기로 만들었다. 파스퇴르와 매치니코프, 코흐같은 미생물학자들의 천신만고 노력이 없었으면 지금껏 어떻게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보톡스'를 주름을 없애고 얼굴 팽팽하게 해주는 단순한 미용 시술로 인식하지만 토양 속 세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자연 속 미생물이 인류의 삶을 어디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식품을 넘어 의약·미용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보톡스 이미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새로운 약, 새로운 소재, 위기에 대처하는 새로운 해법은 대개 "이미 자연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한 종이 사라진다는 것은, 인류가 미래에 받을 수 있는 도움 하나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미생물이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필요하듯, 눈에 띄지 않는 멸종위기종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음은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켜내지 못한 멸종위기종이나 생물다양성이 갖고 있을 생물학적 특성을 연구할 기회를 잃었다면 오늘날의 치료법과 산업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인공지능으로 한 사람이 하나의 출판사가 되고, 한 사람이 하나의 연구소가 되고, 한 사람이 하나의 방송국이 될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은 분명 인간의 활동 영역을 넓혀  훨씬 많은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어느 때보다 강력한 개인이 되었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면서 시간의 여유가 생겨 좀 더 느긋해지고 선택 폭을 넓혀준다. 하지만 자연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기계가 아니므로 생태계 내에서 미생물이나 생물들의 역할을 기술은 결코 할 수가 없다.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이 주는 위안, 갓 구운 빵의 향기, 한 잔의 술이 불러오는 풍요로움은 단지 생물다양성만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다.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곧 미래의 의학과 기술, 그리고 인간 삶의 질을 지키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보호하는 작은 생명 하나가, 내일 인류가 의지할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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