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
[꽃이되고 나비가되고] '가톨릭환경연대'의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작성자
gweconet
작성일
2026-03-12 16:38
조회
8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 '귀하의 전문성과 따뜻한 시선이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우리의 활동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며칠 전 가톨릭 환경연대의 전문위원 위촉 패를 받는 순간 무엇보다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특별했다. 신앙인이 아니어서 처음 접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생태적 용어를 넘어 존재의 근원과 마주하는 가톨릭의 철학적 환경운동을 느꼈다.
세상이 창조되었던 그 때 그 모습의 질서를 보전해야 한다는 거룩한 뜻으로 창조질서를 이해했는데, 모든 생물들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켜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생태환경을 남기고자 하는 환경 정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촉 패에 담긴 문장은 생태학자의 역할과 책임이 함께 담겨 있다. 30여 년 간 필드와 학문에 전념하는 생태학자로 깊이 공부한 전문가는 맞지만 ‘따뜻한 시선’이라는 문구에는 멈칫했다. 숫자와 데이터로 논문을 쓰고 복원 노력을 해 왔지만 생명에 대한 긍휼지심이 있었나?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였다.
‘따뜻한 시선’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에 머물 수 없다. 생명의 편에 서는 일, 생태적 약자인 멸종위기종을 지켜내고 인간의 무지한 손에 휘둘리는 약한 생물들의 시간과 살 곳을 지켜내는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인데, 책임감이 무겁다.
총회에서 그 간의 사업 설명을 들어보니 참 많은 일을 하신 것 같다.
갯벌을 보전하고 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를 모니터링한다. ‘해양쓰레기 소탕단‘ 이라는 이름으로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고 폐해를 알리며 해양쓰레기를 궁극적으로 막기 위한 정책 제안도 했고, 갯벌 보존을 넘어 인천갯벌을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금개구리 서식지 보전을 위한 모니터링과 녹색소비 네트워크 활동을 통한 자원순환을 연구하고, 환경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생활 속 실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야에 실질적인 환경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지 놀랍다.
"환경이나 자연을 생각하면 무뎌지지도 지쳐서도 안 되는데 요즘은 숨을 고를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잠깐 숨을 고르다보면 그 사이에 숲이 베이고, 습지가 메워지고, 강이 오염된다” 오병수 신부님(가톨릭환경연대 지도)의 고뇌에 찬 묵직한 목소리에 서글픈 감정이 이입된다.
어렵게 국립공원이라고, 세계자연유산이라고 보호지역을 만들었는데 정책이 흔들리고, 겨우 지켜낸 생태계나 멸종위기종이 개발 계획 하나에 다시 위협받는다. 그러니 마음이 늘 불안한 상태로 남는다. 지켜낸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더 빠른 시대에 숲도, 강도, 철새도, 곤충도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대신 긴장하고 대신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지쳐간다.
총회 말미에 후원회원의 확대와 기존 회원들의 십시일반을 부탁하는 사무국장의 발언에 화가 난다. 왜 환경운동가들이 회비를 내고 기부금을 받아 국가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가. 헌법이 말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자연환경의 보전은 개인이나 단체의 선의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법과 정책, 행정력을 가진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환경운동은 그 과정을 감시하고 보완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숲을 지키는 현장이나 멸종위기종을 조사·기록하고 습지를 살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개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때로는 소송까지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시민단체다.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조사와 관리 업무를 환경단체가 대신하고 환경부는 예산 탓, 인력난을 핑계로 뒷짐 지고 있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환경운동가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자료를 모으고, 사회적 논쟁을 만들어야 그제야 정부가 움직인다. 그것도 대부분은 “검토 하겠다”거나 “대책을 마련 하겠다”는 사후 대응이다.
환경 파괴를 예방하는 행정이 아니라, 이미 문제가 터진 뒤에야 혹은 개발주의자의 발상으로 움직이는 소극적 행정이 반복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라고 개명을 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극에 다다랐고 더 이상 환경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환경운동이 공공의 책임을 보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책의 공백을 메우며 공공의 책임을 떠받치는 구조가 돼버렸다. 언제까지 국민의 선행과 봉사만 바랄 것인가?
가톨릭환경연대가 출발한 지 32년! 누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
자연의 변화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생물종의 감소와 생태계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축적하는 작업을 회원들과 할 것이고, 필자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여 논문 속에 머무르는 지식이 아니라 시민과 학생에게 전달되는 살아 있는 지식으로 활용할 것이다.
강의와 글, 영상과 교육 활동의 통로로 연구실과 현장을 오가며 생명의 질서를 지키는 의미 있는 노력으로 자연의 권리를 지키는 역할에 일조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핑계낌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며칠 전 가톨릭 환경연대의 전문위원 위촉 패를 받는 순간 무엇보다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특별했다. 신앙인이 아니어서 처음 접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생태적 용어를 넘어 존재의 근원과 마주하는 가톨릭의 철학적 환경운동을 느꼈다.
세상이 창조되었던 그 때 그 모습의 질서를 보전해야 한다는 거룩한 뜻으로 창조질서를 이해했는데, 모든 생물들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켜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생태환경을 남기고자 하는 환경 정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촉 패에 담긴 문장은 생태학자의 역할과 책임이 함께 담겨 있다. 30여 년 간 필드와 학문에 전념하는 생태학자로 깊이 공부한 전문가는 맞지만 ‘따뜻한 시선’이라는 문구에는 멈칫했다. 숫자와 데이터로 논문을 쓰고 복원 노력을 해 왔지만 생명에 대한 긍휼지심이 있었나?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였다.
‘따뜻한 시선’은 단순한 학문적 지식에 머물 수 없다. 생명의 편에 서는 일, 생태적 약자인 멸종위기종을 지켜내고 인간의 무지한 손에 휘둘리는 약한 생물들의 시간과 살 곳을 지켜내는 일을 해 달라는 부탁인데, 책임감이 무겁다.
총회에서 그 간의 사업 설명을 들어보니 참 많은 일을 하신 것 같다.
갯벌을 보전하고 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를 모니터링한다. ‘해양쓰레기 소탕단‘ 이라는 이름으로 해양쓰레기를 수거하고 폐해를 알리며 해양쓰레기를 궁극적으로 막기 위한 정책 제안도 했고, 갯벌 보존을 넘어 인천갯벌을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금개구리 서식지 보전을 위한 모니터링과 녹색소비 네트워크 활동을 통한 자원순환을 연구하고, 환경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생활 속 실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야에 실질적인 환경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지 놀랍다.
"환경이나 자연을 생각하면 무뎌지지도 지쳐서도 안 되는데 요즘은 숨을 고를 시간도 없는 것 같다. 잠깐 숨을 고르다보면 그 사이에 숲이 베이고, 습지가 메워지고, 강이 오염된다” 오병수 신부님(가톨릭환경연대 지도)의 고뇌에 찬 묵직한 목소리에 서글픈 감정이 이입된다.
어렵게 국립공원이라고, 세계자연유산이라고 보호지역을 만들었는데 정책이 흔들리고, 겨우 지켜낸 생태계나 멸종위기종이 개발 계획 하나에 다시 위협받는다. 그러니 마음이 늘 불안한 상태로 남는다. 지켜낸 것보다 잃어버리는 것이 더 빠른 시대에 숲도, 강도, 철새도, 곤충도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대신 긴장하고 대신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지쳐간다.
총회 말미에 후원회원의 확대와 기존 회원들의 십시일반을 부탁하는 사무국장의 발언에 화가 난다. 왜 환경운동가들이 회비를 내고 기부금을 받아 국가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가. 헌법이 말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자연환경의 보전은 개인이나 단체의 선의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법과 정책, 행정력을 가진 국가가 앞장서야 한다. 환경운동은 그 과정을 감시하고 보완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현실은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숲을 지키는 현장이나 멸종위기종을 조사·기록하고 습지를 살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개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때로는 소송까지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시민단체다.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조사와 관리 업무를 환경단체가 대신하고 환경부는 예산 탓, 인력난을 핑계로 뒷짐 지고 있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환경운동가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자료를 모으고, 사회적 논쟁을 만들어야 그제야 정부가 움직인다. 그것도 대부분은 “검토 하겠다”거나 “대책을 마련 하겠다”는 사후 대응이다.
환경 파괴를 예방하는 행정이 아니라, 이미 문제가 터진 뒤에야 혹은 개발주의자의 발상으로 움직이는 소극적 행정이 반복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라고 개명을 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극에 다다랐고 더 이상 환경이라는 단어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환경운동이 공공의 책임을 보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책의 공백을 메우며 공공의 책임을 떠받치는 구조가 돼버렸다. 언제까지 국민의 선행과 봉사만 바랄 것인가?
가톨릭환경연대가 출발한 지 32년! 누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
자연의 변화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생물종의 감소와 생태계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축적하는 작업을 회원들과 할 것이고, 필자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여 논문 속에 머무르는 지식이 아니라 시민과 학생에게 전달되는 살아 있는 지식으로 활용할 것이다.
강의와 글, 영상과 교육 활동의 통로로 연구실과 현장을 오가며 생명의 질서를 지키는 의미 있는 노력으로 자연의 권리를 지키는 역할에 일조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핑계낌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