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
[꽃이되고 나비가되고] 꽃이 되었고, 바람과 숨을 나누다
작성자
gweconet
작성일
2026-03-30 16:10
조회
18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 꽃이 되었고,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마을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흰색 물결이 넘쳐났다. 드문드문 붉은 빛 매화와 능선을 수놓는 꽃길이 비단길이다.
오래 전에 심었던 매화와 만나고 계절의 정취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광양 꽃구경을 하며 하루, 봄을 즐겼다.
계곡과 그늘진 곳에는 아직도 얼음이 그대로 있고 아침엔 영하 7~8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의 끝자락인데 아내가 갑자기 봄을 보고 싶은지 꽃을 보러가자 한다.
겨울 내내 조용히 발육하던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벌써 2번의 껍질을 벗고 식성이 왕성해져 매일매일 밥 달라고 아우성이고, 월동에서 깨어날 소똥구리와 물장군을 위한 본격적인 사육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꽃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같은 삶을 사는 남편과 함께 하다 보니 세상이 온통 벽으로 가로막힌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다 하였고, 산 속 생활 30여 년에 너무 일에 치여 몸이 닳아 없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냥 무심히 손주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었고, 때에 맞춰 꽃구경도 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소박한 욕심을 단 한 번도 채워주지 못해 미안했다. 난생 처음 꽃구경을 계획하고 남도 끝자락 광양 매화를 만나러 갔다.
봄의 매화 (雪梅), 여름의 난초(蘭草), 가을의 국화(秋菊)와 겨울의 대나무(靑竹)를 이르는 4군자는 완전한 인격체인 군자의 상징이다. 이제는 ‘선비’나 ‘군자’라는 단어가 고루하게 느껴지지만 식물을 인간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로, 문학적, 예술적 작품의 소재로 자연을 사용하는 동양적 사고는 아주 멋지다.
장장 7시간이 걸려 달려간 광양의 매화 축제에서 만난 매화는 ‘봄의 시작’이었다. 산 속 연구소 저만치에서 드문드문 피어있는 꽃만 보다가 온 산을 뒤덮은 꽃의 향연을 보니 봄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섬진강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피어 있는 꽃송이들을 직접 대하니 갑자기 매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1300만 관객이 본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매화가 겹쳐진다. 유배지에서 단종을 지키던 궁녀 ‘매화’ 그녀 이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 같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매화와 궁녀 ‘매화’의 삶은 닮았다. 왕위를 빼앗기고 외롭고 척박한 유배지로 쫓겨난 어린 왕 단종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보필했던 마음을 읽는다.
정신을 상징하던 매화는 현실의 삶 속에서도 깊이 들어와 있다. 바로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이다. 사극 ‘허준’에서 역병을 치료하던 매실은 오래전부터 귀한 약재이자 식재료였다. 산 속이라 어디 아파도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해 배가 아프거나 뭔가 탈이 난 것 같으면 따뜻한 물에 매실 한 컵 타서 마시면 웬만하면 다 나았다.
발효된 매실 청은 아내가 주로 사용하는 천연 조미료다. 신맛 속에 깊은 단맛을 낸다 한다. 김치 담글 때도, 생채를 버무릴 때도 고기나 생선 조림의 잡내를 없애주고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더해 요리의 감칠맛을 높여준다 한다.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는 것 같다.
직업병이 도진다. 사람들은 꽃을 보는데 필자는 꽃 속 곤충들이 보인다.
토종벌은 꽃 속에 머리를 깊이 넣고 꿀과 꽃가루를 모으고 몸의 털에는 꽃가루가 저절로 묻어난다. 사람들 눈에는 벌과 비슷해 보이는 꽃등에 역시 서늘한 봄날에 적응한 것 같다. 매화꽃을 들락거리며 꽃가루를 몸에 묻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가며 매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식물들이 잎을 준비하는 동안, 아직은 늦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매화가 꽃을 먼저 피운 덕분에 차가운 계절의 가장자리에서 먹이를 찾아 나선 곤충들에게 소중한 생명의 식탁이 된다. 겨우내 숨죽였던 토종벌과 꽃등에에게 꽃가루와 꿀은 단순한 먹이가 아니라 다시 생애를 이어가게 하는 에너지다.
매화 또한 그 꽃을 찾는 곤충들의 노동이 없으면 매실을 맺지 못하니 꽃도, 곤충도 혼자서는 계절을 완성하지 못한다.
봄의 꽃은 화려하지만 꽃가루에 노출되면 비염, 결막염, 천식 등의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인 ‘꽃가루 알레르기’는 불편하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몸 안에 특정 꽃가루 성분에 반응하는 항체가 이미 형성된 항체와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과민반응을 말한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황사, 미세먼지, 대기오염과 뒤섞이면 외출 자체가 어렵다. 매화는 벌과 꽃등에와 같은 곤충이 짝을 맺어주는 충매화로 꽃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온 동네가 매화꽃인데 부지런히 꽃을 들락거리며 꽃가루를 나르는 곤충이 아니었으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매화 축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작은 생명들이 가장 결정적인 일을 해내고 있다.
매화를 사랑하고 축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꽃에 내려앉는 곤충들까지 함께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 광양시가 기후 변화를 막기는 역부족이지만 곤충을 죽이는 살충제 사용은 특별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꽃만 남고 곤충이 사라진 봄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온전할 수는 없다.
정신적으로는 절개를 상징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제공하고 ‘꽃가루 알레르기’없이 아름다운 꽃만을 보여주는 매화덕분에 아내와 함께 하루 잘 놀았다.
꽃이 되어 꽃과 이야기하고, 바람과 호흡을 맞춰 숨을 나누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서울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열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홀로세곤충방송국(Hib)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 활동도 하고 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holoce@hecri.re.kr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마을 오솔길을 가로지르는 흰색 물결이 넘쳐났다. 드문드문 붉은 빛 매화와 능선을 수놓는 꽃길이 비단길이다.
오래 전에 심었던 매화와 만나고 계절의 정취를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광양 꽃구경을 하며 하루, 봄을 즐겼다.
계곡과 그늘진 곳에는 아직도 얼음이 그대로 있고 아침엔 영하 7~8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의 끝자락인데 아내가 갑자기 봄을 보고 싶은지 꽃을 보러가자 한다.
겨울 내내 조용히 발육하던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벌써 2번의 껍질을 벗고 식성이 왕성해져 매일매일 밥 달라고 아우성이고, 월동에서 깨어날 소똥구리와 물장군을 위한 본격적인 사육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인 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꽃이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같은 삶을 사는 남편과 함께 하다 보니 세상이 온통 벽으로 가로막힌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다 하였고, 산 속 생활 30여 년에 너무 일에 치여 몸이 닳아 없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냥 무심히 손주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었고, 때에 맞춰 꽃구경도 하고 친구들과 놀러 다녔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소박한 욕심을 단 한 번도 채워주지 못해 미안했다. 난생 처음 꽃구경을 계획하고 남도 끝자락 광양 매화를 만나러 갔다.
봄의 매화 (雪梅), 여름의 난초(蘭草), 가을의 국화(秋菊)와 겨울의 대나무(靑竹)를 이르는 4군자는 완전한 인격체인 군자의 상징이다. 이제는 ‘선비’나 ‘군자’라는 단어가 고루하게 느껴지지만 식물을 인간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로, 문학적, 예술적 작품의 소재로 자연을 사용하는 동양적 사고는 아주 멋지다.
장장 7시간이 걸려 달려간 광양의 매화 축제에서 만난 매화는 ‘봄의 시작’이었다. 산 속 연구소 저만치에서 드문드문 피어있는 꽃만 보다가 온 산을 뒤덮은 꽃의 향연을 보니 봄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섬진강 차가운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피어 있는 꽃송이들을 직접 대하니 갑자기 매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1300만 관객이 본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매화가 겹쳐진다. 유배지에서 단종을 지키던 궁녀 ‘매화’ 그녀 이름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 같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는 매화와 궁녀 ‘매화’의 삶은 닮았다. 왕위를 빼앗기고 외롭고 척박한 유배지로 쫓겨난 어린 왕 단종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보필했던 마음을 읽는다.
정신을 상징하던 매화는 현실의 삶 속에서도 깊이 들어와 있다. 바로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이다. 사극 ‘허준’에서 역병을 치료하던 매실은 오래전부터 귀한 약재이자 식재료였다. 산 속이라 어디 아파도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해 배가 아프거나 뭔가 탈이 난 것 같으면 따뜻한 물에 매실 한 컵 타서 마시면 웬만하면 다 나았다.
발효된 매실 청은 아내가 주로 사용하는 천연 조미료다. 신맛 속에 깊은 단맛을 낸다 한다. 김치 담글 때도, 생채를 버무릴 때도 고기나 생선 조림의 잡내를 없애주고 달콤하고 상큼한 맛을 더해 요리의 감칠맛을 높여준다 한다.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는 것 같다.
직업병이 도진다. 사람들은 꽃을 보는데 필자는 꽃 속 곤충들이 보인다.
토종벌은 꽃 속에 머리를 깊이 넣고 꿀과 꽃가루를 모으고 몸의 털에는 꽃가루가 저절로 묻어난다. 사람들 눈에는 벌과 비슷해 보이는 꽃등에 역시 서늘한 봄날에 적응한 것 같다. 매화꽃을 들락거리며 꽃가루를 몸에 묻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가며 매화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다른 식물들이 잎을 준비하는 동안, 아직은 늦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매화가 꽃을 먼저 피운 덕분에 차가운 계절의 가장자리에서 먹이를 찾아 나선 곤충들에게 소중한 생명의 식탁이 된다. 겨우내 숨죽였던 토종벌과 꽃등에에게 꽃가루와 꿀은 단순한 먹이가 아니라 다시 생애를 이어가게 하는 에너지다.
매화 또한 그 꽃을 찾는 곤충들의 노동이 없으면 매실을 맺지 못하니 꽃도, 곤충도 혼자서는 계절을 완성하지 못한다.
봄의 꽃은 화려하지만 꽃가루에 노출되면 비염, 결막염, 천식 등의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인 ‘꽃가루 알레르기’는 불편하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몸 안에 특정 꽃가루 성분에 반응하는 항체가 이미 형성된 항체와 충돌하면서 나타나는 과민반응을 말한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황사, 미세먼지, 대기오염과 뒤섞이면 외출 자체가 어렵다. 매화는 벌과 꽃등에와 같은 곤충이 짝을 맺어주는 충매화로 꽃가루가 날리지 않는다. 온 동네가 매화꽃인데 부지런히 꽃을 들락거리며 꽃가루를 나르는 곤충이 아니었으면 ‘꽃가루 알레르기’로 매화 축제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가장 작은 생명들이 가장 결정적인 일을 해내고 있다.
매화를 사랑하고 축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 꽃에 내려앉는 곤충들까지 함께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 광양시가 기후 변화를 막기는 역부족이지만 곤충을 죽이는 살충제 사용은 특별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꽃만 남고 곤충이 사라진 봄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온전할 수는 없다.
정신적으로는 절개를 상징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제공하고 ‘꽃가루 알레르기’없이 아름다운 꽃만을 보여주는 매화덕분에 아내와 함께 하루 잘 놀았다.
꽃이 되어 꽃과 이야기하고, 바람과 호흡을 맞춰 숨을 나누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서울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열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홀로세곤충방송국(Hib)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 활동도 하고 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holoce@hecri.re.kr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