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

[꽃이되고 나비가되고] 5월의 어느 가슴 아픈 날에

작성자
gweconet
작성일
2026-05-11 12:34
조회
52

https://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083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전 연구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전 연구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농학박사)] 노란 빛 아직 남아있는 개나리와, 붉은빛을 조금 간직한 진달래, 매화나무 꽃망울은 여전히 가지 끝에 매달려 빛나지만 해가 솟기 무섭게 날이 뜨거워지는 햇살 앞에서는 모든 꽃들이 고개를 떨군다.도심보다 늘 다섯 걸음쯤 계절이 늦는 깊은 산속. 봄을 조금 더 천천히 맞고 뒤늦게 시작한 꽃들의 잔치가 이제 끝자락이다. 바람에 흔들리며 꽃비가 내린다.

옛날부터 봄바람은 연분홍이다. 훈훈한 바람이 불 때 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면 봄은 통째로 연분홍인 것 같다. 은은하고 화려한 연한 분홍빛은 살짝 떨고 있는 것 같은 불안 같기도 하지만 원초적 그리움이라 모든 생명이 부활하고 꽃들이 막 피어나는 봄과 잘 어울린다.

일 년 중 가장 다양한 색의 꽃이 피는 계절이지만 심장 모양으로 꽃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애잔해 보이는 부드러운 분홍빛 금낭화는 과연 압권이다. 이 곳 강원도에서는 며느리취라는 산나물로 인기 있는데 ‘이렇게 예쁜 꽃을 먹다니’ 핀잔 하다가 막상 먹어보니 일등급 산나물이다. 그래도 보는 게 더 아름답다.
금낭화. 사진=이강운 소장금낭화. 사진=이강운 소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중 하나인 앵초는 계곡 돌 틈에 자리할 때 더욱 잘 어울린다. 나지막한 잎 사이로 꽃대가 쑥 올라온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너무 예뻐 곤충과 관계없이 연구소에 심은 유일한 관상용 꽃이다. 어떤 곤충도 그 아름다운 꽃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 이상한 꽃이기도 해서 '시집가기 전에 죽는 꽃"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계곡 돌 틈의 앵초. 사진=이강운 소장계곡 돌 틈의 앵초. 사진=이강운 소장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 고양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방문했다. 숲 깊숙한 곳의 산철쭉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환상적인 분홍색의 꽃을 만들 수 있냐며 연신 감탄에 감탄을 쏟아낸다. 우리나라 고유종인 산철쭉은 진달래의 선홍빛과는 다른 그윽한 연분홍빛 꽃으로 우아함 그 자체다.
산철쭉. 사진=이강운 소장산철쭉. 사진=이강운 소장

진달래. 사진=이강운 소장진달래. 사진=이강운 소장

연분홍빛 꽃도 아름답지만 향이 좋은 분꽃나무도 이때쯤 핀다. 숲 속 어디에서 은은히 풍기는 코티 분 향기를 쫓아가니 ‘분꽃나무’라며 고급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극찬을 한다. 중장년층에는 익숙한 화장품 코티 분 냄새와 분꽃나무의 향이 같아 ‘분꽃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곤충만 탐색하던 연구소에서 모처럼 식물이 환대받았다.
분꽃나무. 사진=이강운 소장분꽃나무. 사진=이강운 소장

지린내 나는 연분홍빛 쥐오줌풀이 피기 시작하면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고치를 만들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쥐오줌풀. 사진=이강운 소장쥐오줌풀. 사진=이강운 소장

붉은점모시나무5령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붉은점모시나무5령 애벌레. 사진=이강운 소장

식물은 꽃을 피우고 곤충은 변태를 하고 새는 번식을 하는, 생물들이 같은 계절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는 방향을 연구하는 분야를 '생물계절학'이라 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짜 맞춘 듯 변하는 생물의 주기적 생활사를 관찰하다보면 순서에 맞게 진행되는 자연의 생태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쥐오줌풀이 꽃을 피우면 애벌레가 고치를 만들고 엉겅퀴가 새빨간 꽃을 피울 때 쯤 고치 안에 있던 번데기가 날개를 달고 붉은점모시나비가 된다.

고치는 나비보다 좀 더 진화한 나방이 만드는 ‘집’인데 나비인 붉은점모시나비가 엉성한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 번데기가 된다. 나비와 나방의 중간적 위치에 있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생태적 위치가 바로 고치다.
붉은점 모시나무 고치. 사진=이강운 소장붉은점 모시나무 고치. 사진=이강운 소장

고치는 턱 밑의 실샘에서 실을 뽑아 만드니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지막 상태인 5령 애벌레의 식사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돌아서면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놈들 때문에 하루 종일 먹이식물인 기린초를 보충하느라 종종걸음을 친다.

한 겨울부터 현재까지 약 7개월 간 온갖 노력을 다해 키워 온 멸종위기종 붉은점모시나비가 대 참사를 당할 뻔 했다. 먹이를 주느라 케이지를 열면서 탈출하는 애벌레가 꽤 있는데 아마 이 놈들을 노렸던 것 같다. 사육 케이지와 창문 틈 구석에 딱새가 5개의 알을 이미 키우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 사육 케이지 문틈 구석 딱새 둥지와 알. 사진=이강운 소장붉은점모시나비 사육 케이지 문틈 구석 딱새 둥지와 알. 사진=이강운 소장

5월은 곤충의 애벌레를 양식으로 하는 새가 둥지를 만들고 알을 품어 새끼를 키우는 시기다. 우체통에, 처마 밑과 창고 구석진 곳까지 구멍과 구석만 보이면 집을 짓는 새들이 새끼 키우느라 수많은 애벌레를 물어가지만 질끈 눈을 감는다. 애벌레도 중요하지만 새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멸종위기종 I급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를 물어가는 이런 경우는 그냥 놔 둘 수는 없고 자리를 옮겨 준다.

늦은 봄과 초여름을 각각 반쯤 걸쳤지만 해가 떠서 뜨거워지기 전 새벽일을 시작한다. 방목장에 말이 쌓아놓은 신선한 똥을 수거하여 겨울 휴면에서 막 깨어날 애기뿔소똥구리와 소똥구리에게 밥을 주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한다.

애초에 소똥구리 증식 보전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나 말의 똥이 오염되어 먹거리가 없어진 것이 멸종 원인인데 신선한 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를 방목하는 방법뿐이었다. 주변 모든 분이 말렸지만 방목지를 조성하고 소를 방목했다. 똥을 수거하고 다음 목초지로 이동시키며 늘 모기, 파리에 물리는 극한 직업이었지만 증식하는 즐거움이 컸다.

15년 이상 생리적 특성을 확인하고 실험을 거쳐 매뉴얼을 확보했지만 더 이상 보전을 자신할 수 없다. 기껏 증식을 했지만 방사할 곳도 없고 때 맞춰 먹이 공급을 하면서 제대로 키울 수 없어 실험실에 방사했는데 올 해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각각의 개체를 별도로 키우면서 두더지 같은 천적을 막았는데 아무래도 자연에 방사하는 일은 증식을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약 7개월간 겨울 휴면하느라 굶주렸던 물장군이 올해 처음 식사를 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물장군 번식을 위해 10쌍 짝을 지어 케이지에 넣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작년부터 먹이용 물고기를 제 때에 충분히 제공할 수 없어 개체 수를 줄였는데 자연사 개체가 늘어나면서 번식할 개체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멸종위기종은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증식하기가 힘들다. 숱한 세월 동안 그들의 생리, 생태를 파악하여 생존에 최적화된 특성을 맞춰 매뉴얼을 확립했지만 무한 반복으로 계속되는 증식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육체적 어려움은 견딜만했지만 벌써 3년째 연구비가 없어지면서 아예 연구를 지속할 수 없게 됐다.

숨이 턱에 차오르고, 힘이 달릴 때 일손을 덜어 줄 인력도 필요하고 재정적으로도 안정화되어야 겨우 할 수 있는 멸종위기종 보전이 백척간두에 서 있다. 그래도 멸종위기종 I급만큼은 지키려 붉은점모시나비는 꼭 잡고 있다.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과 자부심으로 스러져가는 생명을 살리느라 지극한 정성을 다했는데 내 손으로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자괴감으로 멸종위기종 보전 20년 세월이 헛되다.

봄날이, 멸종위기종 보전에 투신해왔던 세월이 아깝게 가고 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장은 서울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7년 국내 최초로 홀로세생태학교를 열어 환경교육을 펼치고 있다. 2005년부터 서식지외보전기관인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통해 붉은점모시나비, 소똥구리, 물장군, 금개구리 등 멸종위기종 증식과 복원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홀로세곤충방송국(Hib) 유튜브 채널의 크리에이터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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